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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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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촌

(党家村)

전화 : 0913-5322776
주소 : 中国 陕西省 渭南市 韩城市党家村
개요 :

당자촌(党家村)은 산시성(陕西省) 웨이난시(渭南市) 현급 한청시(韩城市) 동북 시좡진(西庄镇)의 촌급 행정구로 중국역사문화명촌(1차, 2003)으로 지정되어 있다. 당가촌은 약 67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촌락으로 대다수 주민은 당(党), 가(贾) 양 성씨이며 당씨가 먼저 거주하기 시작하였기에 당가(가)촌[党家(贾)村]으로 불리고 있다.

당자촌(党家村)은 산시성(陕西省) 웨이난시(渭南市) 현급 한청시(韩城市) 동북 시좡진(西庄镇)의 촌급 행정구로 중국역사문화명촌(1차, 2003)으로 지정되어 있다. 당가촌은 약 67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촌락으로 대다수 주민은 당(党), 가(贾) 양 성씨이며 당씨가 먼저 거주하기 시작하였기에 당가(가)촌[党家(贾)村]으로 불리고 있다.

당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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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설명

북경(北京)이나 섬서성 소재지 서안(西安)에서 한성행 열차를 이용. 한성에서 다시 하욕구(下峪口)행 뻐스를 타고, 당가촌로에서 하차. 당가촌로에서 당가촌동구밖까지는 2km 거리, 도보로 20분 정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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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당자촌(党家村 dang jia cun 당가촌)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 16중 순위 2위인 당가촌(党家村)은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국도에서 당가촌까지는 2km의 흙길을 걸어야 한다. 뻐스가 다니는 국도에서 당가촌행 손님을 기다리는 기사가 적지 않은데 사실 교통서비스를 삼가하고 도보로 가는것이 가장 좋다.

마침 겨울에 당가촌을 향해 걸으면 좁은 흙길 양쪽으로 거친 사나이같은 광막한 시골의 농경지가 펼쳐져 인상깊다. 가을철 옥수수도 벌써 수확하고 옥수수짚마저도 소각되여 뒤집은 흙밑으로 까만 재가 보인다.

조금 더 늦게 가면 옥수수를 수확한 밭에 벌써 겨울 밀을 심어 푸른 싹이 겨울의 땅을 뚫고 올라와 북방의 겨울에 보기드믄 푸르름으로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현장도 목격할수 있다.

길 양쪽의 가로수는 벌거벗은 몸뚱이로 하늘을 바라고있어 마치 앙상한 비자루모양을 방불케 한다. 그 비자루가 하늘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인지 이 곳의 겨울 하늘은 항상 구름 한점 없이 푸르기만 하다.

석양이 져서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 때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마치 흙길이라는 종이에 글을 쓰려는 연필의 모양이다. 하지만 연필이 아무리 움직여도 길에는 글자가 써지지 않는다.

흙길을 따라 둔덕에 오르면 발 아래로 호로병 모양의 골짜기가 펼쳐지는데 그 곳에 바로 옛스러운 당가촌이 아담하니 자리하고있다. 청색의 벽돌에 재빛의 기와를 얹은 건물들이 촘촘하게 들어앉아서 엄밀한 구도와 조화를 보여준다.


* 위에서 본 당가촌

엄청난 규모를 모여주는 건물군락중 가끔 평평한 지붕을 한 집들이 보이는데 그런 지붕에는 어김없이 노란 곡식을 펴서 건조시키고있어 재빛으로 물든 겨울의 당가촌에 운치를 더해준다.

사면에 나지막한 건물이 둘러선 사합원(四合院)형식이 대부분이라 우뚝 솟은 문봉탑(文峰塔)과 간가루(看家楼)가 더욱 돋보인다. 동네의 주변에는 밭과 숲이 막아서서 당가촌을 세상과 동떨어진 무릉도원으로 만든다.

선경을 방불케 하는 이 동네의 건물은 7백년의 력사를 자랑한다. 1331년 당(党)씨가문의 조상이 이 곳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는데 6백년전에 당씨가문의 외가인 가(贾)씨가문이 합류해 이 동네에는 당씨와 가씨성이 가장 많다.

사돈간인 당씨와 가씨가문은 손에 손을 잡고 장사를 하면서 점점 부를 축적해 부자로 되였다. 섬서(陕西)에서 한성(韩城)은 한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서 작은 북경으로 불리웠는데 한성에서 당가촌이 가장 중요하여 작은 한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엿다.

1700여년의 청(淸) 가경(嘉庆)제로부터 시작해 도광(道光)제를 거쳐 1800여년의 함풍(咸豊)제에 이르는 백여년동안 농사와 장사를 함께 하는 당가촌은 번성일로를 달렸다.

대규모로 건물을 짓고 사합원을 조성했으며 사당과 절, 문성각(文星阁) 등 공공시설도 축조했다. 그 뿐만이아니라 화적을 막기 위해 수십채의 사합원을 망라한 심양보(沁阳堡)라는 이름의 요새를 쌓아서 란이 있으면 동네사람들이 모두 요새에 몸을 숨겼다.

동구밖 흙 둔덕우에 자리한 심양보는 두 팔을 벌려 동네를 보호하는듯한 구도이다. 요새의 사합원을 일괄적인 계획을 거친 모양으로 획일적으로 줄지어 있다.

단, 오늘날 이 요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없어서 고즈넉한 건물과 어제날의 간판만 남아 있고 생명의 흔적이란 자유롭게 여기지저에서 자라나는 이름없는 풀뿐이다.

석양이 비추면 바짝 마른 풀들이 금빛으로 빛나고 아직도 나무가지에 대롱 대롱 달려 있는 야생 대추는 겨울 바람에 몸을 바르르 떠는듯하다. 가끔 요새의 골목에서 유유하게 모이를 찾는 닭과 관광객을 보느체도 안 하는 강아지를 만날수 있어 그 때마다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든다.

황혼이 지는 때 요새를 내려와 당가촌에 들어서면 고즈넉이 계속 뒤를 따른다. 사합원과 사합원이 손에 손 잡은 골목에는 청석이나 재빛의 벽돌을 깔았는데 그러지 않아도 좁은 골목이 양쪽에 키 높이 솟은 건물의 외벽에 대조되어 더 좁고 길게 보인다.

집집마다 사합원으로 진입하는 정문인 문루(门楼)가 그 가문의 위상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심벌이다. 따라서 집집마다 문루를 가장 정교한 조각으로 화려하게 단장한다.

목각물과 석각물, 벽돌조각 등이 눈부신데 "등과(登科)"나 "길경유여(吉庆有馀" 등 아름다운 소망을 대신하는 글과 서예나 그림을 조각해서 주인의 생각과 인생관을 보여준다.



* 당가촌의 비석

당가촌 한 골목의 끝에는 절효비(节孝碑)가 우뚝 솟아 있다. 높은 단과 건물을 가진 절효비에는 청왕조의 황실을 뜻하는 황청(皇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위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비석의 둘레에 투조로 정교한 꽃을 조각하고 안쪽에는 입체로 매화꽃과 학, 사슴 등 상서로운 짐승을 조각해 금방이라도 비석에서 달려내려올듯 형상적이고 생동하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비석의 주인은 16살에 남편을 잃고 한 평생 수절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비석의 배후에 한 녀인의 꽃같은 인생이 스며있는것이다.

엄밀한 구도의 사합원과 정교한 상마석(上马石), 숙연한 분위기의 사당, 공부를 잘하고 효도하며 근검하게 가문을 이어가야 한다는 등 다양한 가훈들이 보는 사람을 저 먼 옛날로 인도한다.

어둠이 내리면 당가촌은 더욱 고요하다. 이 동네의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지 밤빛이 짙어지기도 전에 골목에는 벌써 인적이 없다. 따스한 불빛이 창문으로 흘러나오면서 창틀의 정교한 조각을 드러낸다.

밤에 당가촌의 골목을 거닐면 반들반들한 청석이 푸른 빛을 뿌리고 방음이 너무나 잘 되여 들리는 소리란 오직 자신의 발걸음소리뿐이다. 고요한 당가촌의 밤을 걸어서 동구밖에 서면 저 둔덕우에 호위병같은 요새가 어렴풋이 보인다.

겨울밤에는 골목을 거닐기보다 주인과 환담하는것이 훨씬 더 좋다. 따뜻한 온돌에 앉아서 땅콩과 호두를 까고 대추를 먹으면서 주인집의 앨범을 보면서 수많은 가족을 소개받는다.

주인은 출세한 가족을 이야기할 때면 얼굴과 목소리에 자랑을 흠뻑 담는다. 1991년 일본의 한 교수가 <당가촌>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당가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당가촌은 세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관광자원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9km 떨어진 한성시로 직통하는 뻐스는 개통하지 않고 당가촌 고유의 생활절주를 유지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일과 생활이 영향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자신의 친척을 맞이하는듯 관광객을 받아들인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대공사를 벌이지도 않고 손님이 오면 집에 불러다 차 한 잔 대접하면서 쉬여가게 하고 끼니때가 되면 소박한 음식을 차린다.

그들은 대부분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면서 해물같이 고급음식은 없어도 안해가 만드는 분식은 맛이 끝내준다고, 숙박과 식사요금은 당가촌에서 규정된 가격이 있으니 바가지는 없다고 농담도 곁들인다.

세상과 당가촌 사이에 솟은 흙둔덕이 세속의 실리를 막아서인지 이 곳 사람들은 오늘날도 백여년전처럼 순박하고 여유로워 당가촌은 외부인들에게 더욱 매력있게 다가온다.


* 당가촌의 꽃 찐빵

당가촌의 전통가옥은 모두 입구에 갑을(甲乙)순으로 순서가 매겨져 있는데 등급이 높을 수록 보존이 잘 되고 가치가 더 높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가옥을 볼수 없는 경우에는 입구의 등급을 보고 선택해서 보면 시간도 절약할수 있다.

찐빵 화마(花馍)전시관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찐방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한 화마는 섬서인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음식이다. 명절이 되거나 나들이를 갈 때, 경사를 치를 때 모두 다양한 찐빵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중복되는 모양이 하나도 없는 화마는 각자 아름다운 뜻을 내포한다. 살아 움직이기라도 하는 듯 형상적인 화마는 음식이라기보다 이 곳의 공예품이라 함이 더 어울릴것이다.


가격정보: 40위안/인
개방시간: 08: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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