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114
무료등록

10년 전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백망산삼림공원

관심도

남:
0%
여:
0%
전체 1,119위
업종 426위
갱신: 0 10년 전 업데이트
리뷰: 0
댓글: 0
추천: 0
사진: 6 10년 전 업데이트

백망산삼림공원

(百望山森林公园)

전화 : 010-62884508
링크 : http://www.baiwangshan.com/
주소 : 中国 北京市 海淀区 黑山扈北口19号
개요 :

바이왕산(百望山 bǎi wàng shān sēn lín gōng yuán 백망산삼림공원 百望山森林公园) 베이징 성곽과 가장 가까운 삼림공원으로 사계절 내내 독특한 경관으로 유명하며, 베이징 교외 샤오시산(小西山, 소서산)의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로 꼽힌다.

바이왕산(百望山 bǎi wàng shān sēn lín gōng yuán 백망산삼림공원 百望山森林公园) 베이징 성곽과 가장 가까운 삼림공원으로 사계절 내내 독특한 경관으로 유명하며, 베이징 교외 샤오시산(小西山, 소서산)의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로 꼽힌다.

백망산삼림공원
복사

주변업체

1/4

  1. 해방군총참모부총병원

    의료/미용 / 종합병원
    5분 거리

    전체 4000위

    업종 151위

  2. 동인당약국(바이왕산점)

    의료/미용 / 약국/기기
    5분 거리

    전체 25796위

    업종 2421위

  3. 홍산서정호텔

    숙박 / 호텔
    10분 거리

    전체 1065위

    업종 105위

海淀区 지역 114업체 등록은 아래 운영사에서 대행해 드립니다.
코리안 183-1086-0561 Onkorean1998
업체옵션

해당정보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정보입력 참여하기

위치설명

북경시 해전구 흑산이북입구19호

교통정보: 베이징시(北京西, 북경서) 기차역에서는 특(特)6번, 첸먼(前门, 전문)에서는 특(特)4번 버스, 상디(上地) 지하철역에서 (临)9번 버스를 타면 바이왕산에 바로 도착한다. 이 외에도 716, 718, 운통(运通)112, 903, 933, 968, 330번을 타고 헤이산(黑山扈北口)이나 바이왕산(百望山, 백망산)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새로운 정보입력 참여하기

상세설명

입장료: 6위안(학생, 노인, 군인, 장애인은 유효한 증서 지참시 3위안)
개방시간: 오전 8시-오후 5시

> 바이왕산(百望山,bǎi wàng shān sēn lín gōng yuán,백망산삼림공원) 소개

국가 2A급 관광지로 베이징시 과학교육의 기지이기도 하다. 시내 중심에서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바이왕산 국가삼림공원은 이허위안(颐和园, 이화원)에서 북쪽으로 3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베이징 성곽과 가장 가까운 삼림공원이기도 하다.

현재 봄에는 꽃, 여름에는 그늘, 가을에는 단풍, 겨울의 푸르름 등 사계절 내내 독특한 경관으로 유명하며 특히 바이왕산의 단풍은 단풍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하다. 이 곳의 단풍은 이미 대규모의 단순림(纯林)이 조성되어 있으며, 첫서리가 내린 뒤에는 광활한 면적의 단풍잎들이 서로 앞다투어 물들면서 모든 산이 붉게 물들어버린다. 층층이 조화롭게 물들어 버린 단풍으로 인해 바이왕산삼림공원은 베이징 시민들이 단풍, 촬영, 사진촬영의 최적의 장소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 곳의 교통은 대체적으로 편리한 편이다. 우환(五环)의 샤오자허차오(肖家河桥, 초가하교)에서 2킬로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으며, 공원 입구로 바로 오는 수많은 버스들이 있다. 공원 동문과 북문에는 대규모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으며,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에는 바로 입장권 검사를 받고 산에 오를 수 있다.

바이왕산은 타이항산(太行山, 태행산)이 화베이(华北, 화북)평원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로 메인 봉우리는 해발 210미터를 자랑하며, “타이항의 최고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총면적 200만 평방미터의 공원은 삼림이 울창하고 공기 중에 음이온자 함유량이 높아 베이징 교외 샤오시산(小西山, 소서산)의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로 꼽힌다.
1992년 지어진 이 공원은 환경보호홍보 및 녹색문화교육으로 유명하며, 애국주의교육, 환경보호교육, 교외 야영 관광, 체육활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주요 경관으로는 수도녹색문화 비림(碑林), ‘철혈충혼(铁血忠魂)’기념관, ‘헤이산후(黑山扈, 흑산호) 항일전투’기념비, 유격대의 숲 기념비, 서타이쥔먀오(佘太君庙, 사태군묘), 유이팅(友谊亭, 우의정), 왕샹팅(望乡亭, 망향정) 등이 있다.

'수도녹색문화비림'은 산세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 삼림 경관 중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는 베이팅(碑亭, 비정), 베이랑(碑廊, 비랑) 및 비석 조각 예술벽, 공산당 및 국가 지도자와 사회 유명인사들의 서문 모자이크와 서화 예술가들의 조각 작품 1천 여점이 있다.

‘철혈충혼’기념관 내에는 신민주주의 혁명 시절 희생된 200명이 넘는 투사들의 사적(事迹)을 소개하고 있으며, 80점이 넘는 진귀한 문물급의 열사 사진, 가서(家书), 시초(诗抄)들이 수집되어 있어 애국주의교육과 혁명전통교육에 있어서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헤이산후항일전투’기념비는 1937년 발발한 바이왕산 헤이산후 항일전투를 기념하는 것으로 당시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끄는 항일저항군은 일본군과 용감하게 전투를 벌여 적기를 격추시키고 수많은 일본군들을 죽였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군인들이 직접 ‘헤이산후전투기념비’를 직접 돌에 새겨 비석을 만들어 바이왕산 정상의 왕징러우(望京楼, 망산루) 내부에 뒀다.

'유이팅'은 친일 인사 톈리룽타이랑(田栗荣太郎)이 일본 임업 방문단을 이끌고 바이왕산을 참관한 후에 중일 양국의 우호를 위해 이 곳에 정자와 비석을 세운 것이다.


추천 명소

서타이쥔먀오(佘太君庙, 사태군묘)
산 정상에 있는 원래 묘에는 석상 하나가 있는데 설에 의하면 이 동상은 진산쓰(金山寺, 금산사)에서 이삼(李三)이라 불리던 한 승려의 석상이라고 한다.

북송 연간에 량륙랑(杨六郎)과 한창(韩昌)이 산 아래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사태군이 산 위에서 전쟁의 형세를 살피고 있었다. 한 시진(时辰, 지금의 2시간)도 채 되지 못해 요나라군은 패퇴를 하고 도망가기 시작했으며, 보이는 것이라곤 량륙랑이 말을 급히 몰고 병사들을 요새 밖으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사태군은 한창이 자신의 아들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진산쓰로 가서 부처에게 아들의 무사평안을 빌고자 그 곳으로 갔다. 해가 어둑해질 즈음에 도착한 사태군은 문을 두드리자 늙은 방장(方丈)은 사태군이 왔음을 알고 황급히 나가 그를 맞이해 사랑방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날 사태군은 불사(佛事)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려하자 방장은 이를 만류하며 하루 더 머물다가라고 부탁했다.

그 때 우연의 일치인지 절 내에 이삼(李三)이라 불리는 화상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에게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그의 고향은 관문의 일대인데 어느 날 요나라 군대가 그의 집에서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질렀을 때 다행히도 량륙랑이 이끌던 군대가 요나라 군대를 무찌르면서 이삼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 출가해 승려가 된 후로 사태군을 만나게 되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사태군 앞에서 당시 부닥쳤던 상황들을 서술했다.

이삼은 어렸을 때부터 석공을 했었기 때문에 양가의 은혜를 보답하고자 사태군을 위해 석상 하나를 조각했는데 조각을 본 사태군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삼은 서태군 석상을 사랑방에 두었는데 이는 량가가 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하는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진산쓰에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매번 사태군 상에 향을 피고 참배를 하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왕얼산(望儿山, 망아산)의 정상에 사태군묘를 짓자 이삼은 자신의 석상을 왕얼산 정산으로 옮겨 묘 내부에 둠으로 사람들이 계속 그를 기릴 수 있도록 했다. 사태군묘가 생긴 이후로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청나라 말기에는 전란으로 인해 묘가 소실되면서 석상 역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현재 묘 내에는 사태군, 량팔저(杨八姐), 량륙랑 3명의 석상이 있는데 이는 소실된 이후에 새로이 만든 것이다.

자오쯔타이(教子台, 교자대)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숲에 수몰되어버린 자오쯔타이는 하나의 거대한 암석으로 암석상에는 ‘자오쯔타이(教子台)’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관련 설화에 의하면 사태군(佘太君)이 산에 오를 때 아들 량륙랑의 배웅을 거절하고 돌 위에 서서 아들이 빨리 하산에서 요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우기를 독촉했다고 한다.
이는 국가를 위한 충성과 어머니에 대한 효도에 대한 가르침의 의미를 담고 있어 ‘자오즈타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후이터우스(回头石, 회두석)
산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산허리에 사각형의 정자가 있는데 이를 후이터우스라 한다. 등산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가이드 라인이라 할 수 있으며, 마치 작문할 떄 위의 글을 받아서 뒤에 나오는 글을 잇는듯한 작용을 한다. 실제로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하여 지나친 성을 내려다보고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더 빨리 걸어가야 할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정자 동쪽에는 ‘후이터우스(回头石)’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 거대한 돌이 하나 있는데,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사태군이 이 곳에서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아들에게 잠시 쉬라고 명령을 내린 곳이라고 한다.

라오룽터우(老龙头, 로룡두)
산등성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노룡(老龙)을 닮은 거석(巨石)이 하나 있는데 마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음료를 마시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옛날 타이항산(太行山, 태행산)에 오랜 가뭄이 들어 모든 사람들이 비가 내리길 바라는 실날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때 노룡이 머리를 들고 직접 동쪽으로 가서 둥하이(东海, 동해)의 물을 싣고 와 모두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이에 떄맞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서 수목들이 다시 울창해지고 생기가 만연해졌다. 설에 따르면 사태군의 용머리 지팡이가 바로 이 곳의 나무들을 선별해 그 중의 하나를 취해 만들었다고 한다.

왕얼타이(望儿台, 망아대)
타이쥔링(太君岭, 태군령)의 슬레이트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면 도로 동북쪽 산등성이상에 있는 사각형 테이블 위에 ‘서타이쥔왕얼샹(佘太君望儿像, 사태군망아상)’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설에 의하면 사태군이 멀리서 아들을 바라보았던 곳이라 한다. 원래의 왕얼타이는 오랜 기간 보수를 하지 않아 여기저기 파손된 부분이 많았지만 병자년(丙子年) 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실시해 원형으로 복구되었다.

새로운 정보입력 참여하기

업체이미지 업체에 가보셨어요?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